
(서울=국제뉴스) 고정화 기자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일 발표한 ‘21대 대선 지역개발공약 남발 실태’는 대한민국 선거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1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전국을 돌며 쏟아낸 수백 건의 지역개발공약 중 상당수가 재탕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슬로건형 공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조 원대 예산이 필요한 초대형 개발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재원조달 방안, 사업 주체 등 핵심 정보가 빠진 ‘깜깜이 공약’이 다수라는 점에서 유권자 기만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실련이 양당의 시도별 공약집을 분석한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총 124건 중 38건(30.65%)이 개발공약이었고, 이 중 절반 이상인 21건(55.26%)이 20대 대선에서 이미 제시된 재탕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총 463건 중 155건(33.48%)이 개발공약이었으며, 이 중 27건(17.42%)이 재탕 공약으로 확인됐다.
특히 수도권, 충청권, 부산·세종·인천 등지에서 개발공약 비중이 40%를 넘는 등 지역별 편차도 뚜렷했다. 양당 모두 지자체의 숙원사업을 공약으로 차용한 경우가 많아 공약 간 유사성도 상당했다.
서울 철도 지하화, 부산 광역교통망, 인천 경인선·경인고속도로 지하화, 경기 GTX 확충, 전남 초광역교통망 등은 양당 모두의 공약에 포함됐다.
문제는 이들 공약 대부분이 도로, 철도, 공항, 산업단지 등 토목 중심의 대규모 개발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예산 추계나 실행 전략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울 철도 지하화는 사업비만 25조 원 이상이지만 예타조사조차 미실시 상태이며, 재원조달은 공사채와 개발이익 활용에 의존하고 있다.
부산 경부선 지하화는 일부 구간(2.8km)만 착공됐고, 나머지 구간은 예산 확보 계획이 없다.
인천 경인철도·인천대로 지하화는 철도 예타에서 탈락했고, 세종 CTX는 예타 중단 후 민자 전환, 경기 GTX 확충은 일부 노선만 예타를 통과했으며, 부울경 GTX는 총사업계획조차 미정인 상태다.
경실련은 “이처럼 재정계획도 책임 주체도 없는 공약은 유권자에 대한 기만”이라며, “정당이 지자체 숙원사업을 베끼듯 공약화하고, 선거 때마다 반복하는 무책임한 개발공약은 국가·지방재정에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경실련은 지난 6월 양당 대선 후보에게 공약별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질의서를 발송했지만, 어느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다. 이는 단지 정당의 무책임만이 아니라, 현행 제도상의 공백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정당이 제출하는 공약서에는 재원 조달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할 의무가 없다. 이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도 공약서 제출 및 비용추계 제도 도입에 대한 개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일 18개월 전부터 공약 비용추계 가능, 30억 원 이상 공약은 국회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를 요청, 정당은 공약 발표일 30일 이내 비용추계 결과를 함께 발표하고,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식이다.
경실련은 이번 실태 발표를 통해 선거공약 남발을 방지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 중심 선거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선거공약서 제출 의무화 △공약별 재원소요 및 조달방안 기재 법제화 △비용추계 및 공개 절차 마련 등을 제안했다.
김동원 인천대 교수(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는 “공약은 정치적 약속이자 정책의 설계도”라며 “이제는 실현 가능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공약 검증 제도를 제도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당이 내놓는 공약이 더 이상 ‘선거용 슬로건’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바꾸는 실질적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유권자도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책임 구조를 따져 묻는 ‘정책 감시자’로 나서야 할 때이다.
고정화 기자 mekab34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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